금융
- [K생산적금융을 묻다 프롤로그①] 아시아 금융허브 싱가포르의 힘, 생산적금융 생태계의 길을 보다
- <편집자주> 이재명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을 꼽으라면 단연'생산적 금융'이다. 생산적 금융은 금융회사 자금이 이자장사에 그치기 쉬운 부동산 등 담보대출에 머물지 않고 첨단전략산업, 벤처창업시장, 녹색금융, 지방금융등 국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생산적 방향으로 흘러가도록유도하는 금융대전환을 말한다. 싱가포르는 아세안은 물론 세계적인금융선진국으로 생산적 금융 측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국가로 꼽힌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싱가포르의 금융이 발휘하고 있는 경쟁력을 직접 느껴보고K생산적금융이 나아야 할 방향을 직접 모색해보고자 한다. -프롤로그 글 싣는 순서 ① 아시아 금융허브 싱가포르의 힘, 생산적금융 생태계의 길을 보다 ② '이자장사 아닌 투자금융 선진국' 싱가포르, 한국 은행들 현지서 'IB 영토확장' ③ 스타트업·국부펀드 키운 싱가포르 생산적금융, 한국 자본시장도 배운다 ④ [인터뷰] '생산적금융' 저자 김용기 "생산적금융은 선언 아닌 설계의 문제, 돈의 방향 바꿔야" ⑤ [인터뷰] 서강대 교수 김종호 '싱가포르 금융 경쟁력, 정부 주도 과감한 개방에서 나왔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적도 부근의 작은 섬나라.말레이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면적 736㎢, 인구 611만 명이 모여 사는 도시국가다.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연방에서 분리 독립할 때만 해도 내세울 만한 천연자원도, 든든한 내수시장도 없었다. 동과 서를 잇고 중동까지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이 전부였다.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싱가포르는 아세안 10개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위를 확보한 금융 강국으로 우뚝 섰다.MSCI지수는 글로벌 펀드와 기관 투자자들이 활용하는 대표적 글로벌 주가 지수다. 범위를 아세안에서 아시아 전체로 넓혀봐도 현 MSCI 선진시장에 편입된 곳은 싱가포르와 홍콩, 일본 등 3곳뿐이다.싱가포르의 이 같은 금융시장 위상은 숫자로도 뒷받침된다.현재 싱가포르에는 600개가 넘는 글로벌 금융기관이 둥지를 틀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지역 본사만 4200여 개에 이른다. 세계 고액 자산가들이 앞다퉈 이주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다.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9만9천 달러로 미국과 노르웨이 등 주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다. 한국(약 3만7천 달러)의 두 배를 훌쩍 웃돈다.자원 빈국이었던 싱가포르는 어떻게 글로벌 자본과 기술, 스타트업이 모여드는 아시아 금융허브가 될 수 있었을까.그 배경에는 단순한 금융산업 육성을 넘어 정부와 국부펀드, 정책금융, 민간 자본,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하나로 묶어낸 금융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금융을 국가 미래 전략산업으로 키워낸 대표적 사례"라며 "뉴욕의 월스트리트, 영국의 카나리워프처럼 글로벌 금융기관과 자본이 집약된 마리나베이와 래플스플레이스 일대가 국가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싱가포르 주요 업무지구에는 글로벌 대형 금융사를 포함 600여 개 금융기관이 모여 있다. 사진은 싱가포르 금융지구 모습. <연합뉴스>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싱가포르 선진 금융 시스템의 핵심은 싱가포르통화청(MAS)을 중심으로 한 통합 금융정책, 유연한 자본시장 규제, 그리고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을 통한 장기 투자 구조에 있다.싱가포르의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싱가포르통화청은 중앙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핀테크와 디지털자산, 녹색금융 등 신산업 육성까지 직접 주도한다.규제와 정책이 한 지붕 아래서 움직이다 보니 속도와 일관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이러한 정책 유연성을 바탕으로 싱가포르통화청은 2020년 아시아 최초로 가변자본기업(VCC) 제도를 도입했다. VCC는 여러 펀드를 하나의 '우산' 아래 묶어 운용할 수 있고 자본 조정과 환매가 유연해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을 싱가포르로 끌어들이는 기폭제가 됐다.이렇게 유입된 자금은 국부펀드인 테마섹(Temasek)과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을 통해 국가 산업 성장을 이끌 장기 자본으로 탈바꿈한다.테마섹은 운용자산 일부를 인공지능(A) 딥테크 등 초기 기술기업 투자에 과감히 배분하는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버텍스홀딩스, 세비오라홀딩스 등 테마섹 산하 벤처캐피털들도 단순 투자를 넘어 글로벌 네트워크 연결까지 지원하며 기업과 산업 성장을 뒷받침한다.싱가포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핀테크, 딥테크, 기후테크 등 혁신산업을 키울 수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로 지속가능한 도약의 길을 만들고 있다.싱가포르는 2014년 '스마트네이션(Smart Nation)' 전략을 발표한 뒤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과 창업 생태계 육성을 추진해 왔다.싱가포르경제개발청(EDB)은 첨단기술, 바이오, 반도체 등 전략산업 기업에 최대 15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 주거나 파격적 연구개발 세액공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구글, 메르크 등 글로벌 공룡들을 유치했다.반은 사자, 반은 물고기 형상을 한 싱가포르 상징물 '멀라이언(Merlion)'은 도시국가의 기원을 담고 있다. 물고기 몸통은 어촌 마을이었던 싱가포르와 '호수'를 뜻하는 말레이어 '타섹(tasek)'에서 유래한 옛 이름 '테마섹(Temasek)'을 상징한다. 사자 머리는 싱가포르의 옛 명칭인 '싱가푸라(Singapura·사자의 도시)'를 뜻한다. <싱가포르관광청>싱가포르기업청은 투자와 보증, 해외 진출에 이어 자금 회수시장까지 매끄럽게 연결되는 전주기 스타트업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단기 실적 압박 없이 장기 전략에 집중할 수 있는 모험자본 생태계를 국가가 나서서 깔아준 것이다.그 결과 글로벌 스타트업 분석기관 스타트업블링크가 발표한 싱가포르의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는 2020년 16위에서 2025년 4위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생산적금융을 핵심 정책 과제로 내건 이재명 정부의 싱가포르와 협력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3월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해 로렌스 웡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 개선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과 첨단산업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 협력 강화 차원이다.국민성장펀드 등 생산적금융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산업은행은 최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산하 자산운용그룹 세비오라(Seviora)와 투자 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첨단 전략산업과 유망 중소기업 투자 확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1년 내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싱가포르는 정부 정책과 민간 자본시장의 유기적 협력 시스템, 달러와 영어 중심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돈의 길목'을 완성했다.부동산 담보대출 위주의 이자 장사에서 벗어나 첨단 산업과 스타트업으로 자금의 흐름을 돌리려는 한국 금융에도 싱가포르의 생산적금융 생태계는 선명한 이정표를 던지고 있다.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