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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직원과 소통 중시하는 세심한 CEO
장윤경 기자 strangebride@businesspost.co.kr 2014-10-09 12: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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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권오갑은 1951년 2월10일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효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칼어 학과를 졸업했고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그는 1987년 현대중공업 런던사무소 외자구매부 부장으로 실무경험을 쌓았다. 이후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전무로 옮겼고 입사한 후 20년 만에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됐다.

그는 30여 년 동안 영업, 구매, 경영지원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현대중공업이 아부다비 국제석유투자회사로부터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면서 2010년 권오갑은 현대오일뱅크 초대사장으로 부임했다.

2014년 2분기 현대중공업이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해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하면서 권오갑은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취임했다.

2016년 10월 17일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Chairman of HD Hyundai
Kwon Oh-gap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당시 스킨십경영과 현장경영으로 2011년 설립 25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로부터 임금협상을 전적으로 위임받았다.

현대오일뱅크 대표시절 매주 하루 서울에서 충남 대산 현대오일뱅크 공장으로 가서 현장 직원들과 똑같이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아침식사를 하고 일과를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직원들과 함께 ‘경영진과 대화’ 시간을 열었다.

사장 업무용 차량인 에쿠스를 직원들 결혼, 장례식 등 경조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내줬다. 또한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임직원들이 급여 1%를 사회에 기부하도록 했다.

본인 스스로 일일 주유원으로 모범을 보이면서 모든 임직원이 직영주유소에서 연 20시간 이상 근무하도록 해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다.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되기 전 현대오일뱅크의 시장점유율은 국내 정유회사중 최하위인 18%대에 머물러 있었는데, 사장을 맡고 나서 시장점유율을 4% 정도 끌어올렸다. 2013년 12월과 2014년 1월 국내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고도화율을 국내 정유회사 중 두 번째로 높였다. 고도화는 벙커C유와 아스팔트 등의 중질유를 부가가치가 높은 휘발유나 경유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오일뱅크 사장 취임 뒤 현장안전에도 각별히 신경썼다. 현대오일뱅크 사장 시절 ‘상생안전론’을 내놓았다. 그는 공장 안전 업무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협력업체 직원의 복지를 강화해야 공장의 화학물질 누출 등 각종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에 협력업체 직원 300여명이 이용할 수 있는 한마음관을 준공했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은 2012년 5월 12일 이후 2013년 4월까지 무재해기록 200만 인시를 기록했다.


2014년 현대중공업의 구원투수로 전격 등장하면서 파격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노조가 파업불사를 외치며 강경입장을 고수하자 노조를 달래기 위해 몇일씩 출근길 정문 앞에서 "한 번 더 믿어달라"며 일일이 악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태도가 바뀌지 않자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3사 임원 260여 명에게 일괄사표 제출을 요구했다. 임원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해 분위기를 잡으려 한 것이다. 권 사장은 특히 사표를 제출받으면서 현대중공업 사장과 현대미포조선 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서울사무소 전무로 경험을 쌓았다. 2004년 울산현대호랑이축구단 단장을 맡았다. 3년 후인 2007년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울산현대호랑이축구단 대표이사가 됐다.

2009년 현대중공업스포츠 대표이사와 한국실업축구연맹 회장을 맡았다.

2010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대오일뱅크에 있으면서 2013년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아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014년 9월 현대중공업 사장에 올랐다. 현대중공업이 2분기 사상 최악의 손실을 내자 현대중공업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 학력

1966년 효성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7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칼어과에 입학했다.

울산대학교 산업경영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상훈

2011년 한국자원경제학회 학술상 에너지산업발전부문 대상을 받았다.

2012년 제49회 무역의 날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2년 제21회 다산경영상 전문경영인부문을 받았다.

◆ 상훈

2011년 한국자원경제학회 학술상 에너지산업발전부문 대상을 받았다.

2012년 제49회 무역의 날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2년 제21회 다산경영상 전문경영인부문을 받았다.

어록


“당분간 구조조정은 없다. 우리는 모두 현대중공업 식구다. 한 식구가 된 만큼 그룹과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주력하자." (2010/08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취임 후)

“회사는 돈만 버는 곳이 아니다. 구성원 각자의 인생을 가치있게 해주는 것도 회사의 큰 책임중 하나” (2012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임기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늘 새벽 3시30분 울산공장을 향해 출발했는데 나는 오전 5시는 돼야 출발하니 이른 것도 아니다. 오전 6시30분에 공장에 도착하면 옷 갈아입고 6시50분부터 중역들과 아침을 함께하며 회의한다.” (2012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임기 당시)

“전문가가 아니라 내가 잘 몰라요. 그러니 알아서 더 잘해야지요. 단지 내가 해줄 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만 얘기해주세요.” (2012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임기 당시)

“팀을 이끄는 감독과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 사이에 신뢰와 조직력이 무너지면 아무리 강팀이라도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과거 명성에만 안주해 변화하지 않으면 실패만이 있을 뿐이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2012/06 회사 창립 50주년을 맞아 직원들에게 쓴 편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겠다는 한가지 마음으로 여러분을 찾았고 많은 것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제 여러분께 다시 변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사장인 저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러분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나가겠다. 이제 과거를 탓할 여유가 없고 함께 뜻을 모아 출발해야 한다. 저를 믿고 여러분의 뜻을 한 번만 더 모아달라.” (2014/09/29 ‘임직원께 드리는 글’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미래를 바라보자.” (2014/09/16 취임사에서)

“열악한 조건이었던 현대오일뱅크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조직력으로 동종업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세계 1위라는 명성과 영광은 잠시 내려놓고 현대중공업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으자.” (2014/09/16 취임사에서)

“노사 편가르기는 그만 두자. 오직 현대중공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현대중공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를 갖고 힘을 모아 다시 시작하자.” (2014/09/16 취임사에서)

◆ 사건/사고

2014년 9월 현대중공업에 취임하자마자 현대중공업 노조와 임금단체협상에 난항을 겪어 20년 만에 파업위기를 맞았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경영진이 투표를 방해하고 있다며 파업찬반투표를 무기한 연장했다.

◆ 평가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당시 스킨십경영과 현장경영으로 2011년 설립 25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로부터 임금협상을 전적으로 위임받았다.

현대오일뱅크 대표시절 매주 하루 서울에서 충남 대산 현대오일뱅크 공장으로 가서 현장 직원들과 똑같이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아침식사를 하고 일과를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직원들과 함께 ‘경영진과 대화’ 시간을 열었다.

사장 업무용 차량인 에쿠스를 직원들 결혼, 장례식 등 경조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내줬다. 또한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임직원들이 급여 1%를 사회에 기부하도록 했다.

본인 스스로 일일 주유원으로 모범을 보이면서 모든 임직원이 직영주유소에서 연 20시간 이상 근무하도록 해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다.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되기 전 현대오일뱅크의 시장점유율은 국내 정유회사중 최하위인 18%대에 머물러 있었는데, 사장을 맡고 나서 시장점유율을 4% 정도 끌어올렸다. 2013년 12월과 2014년 1월 국내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고도화율을 국내 정유회사 중 두 번째로 높였다. 고도화는 벙커C유와 아스팔트 등의 중질유를 부가가치가 높은 휘발유나 경유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오일뱅크 사장 취임 뒤 현장안전에도 각별히 신경썼다. 현대오일뱅크 사장 시절 ‘상생안전론’을 내놓았다. 그는 공장 안전 업무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협력업체 직원의 복지를 강화해야 공장의 화학물질 누출 등 각종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에 협력업체 직원 300여명이 이용할 수 있는 한마음관을 준공했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은 2012년 5월 12일 이후 2013년 4월까지 무재해기록 200만 인시를 기록했다.


2014년 현대중공업의 구원투수로 전격 등장하면서 파격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노조가 파업불사를 외치며 강경입장을 고수하자 노조를 달래기 위해 몇일씩 출근길 정문 앞에서 "한 번 더 믿어달라"며 일일이 악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태도가 바뀌지 않자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3사 임원 260여 명에게 일괄사표 제출을 요구했다. 임원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해 분위기를 잡으려 한 것이다. 권 사장은 특히 사표를 제출받으면서 현대중공업 사장과 현대미포조선 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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