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업계 불황 중 만난 고환율로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고환율에 따른 영향은 원재료가 상승뿐 아니라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불황 타개를 위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의 비중 확대 움직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 LG화학은 여수산업단지에서 나프타분해설비(NCC) 구조조정을 위해 GS칼텍스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1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1480원을 넘어섰다.
원/달러 환율은 오전 11시8분경에 1482.3원까지 올라 올해 4월9일 장중 1487.6원까지 오른 뒤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뛰었다.
다만 원/달러 환율은 이후 하락 흐름으로 전환하면서 1479.8원으로 이날 거래를 마쳤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를 가동하는 등 환율 안정에 공을 들이고 있음에도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1500원 선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국내 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놓고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미 구조적 불황에 고전 중인 석유화학 산업은 고환율에 따른 영향에 긴장감이 클 산업으로 여겨진다.
김종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고환율에 따른 영향을 놓고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 기업의 수익성 등이 좋아질 수 있지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이나 식품 등의 기업들은 힘들어 진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물가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개인의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업의 투자가 부진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은 100% 수입되는 원유가 주요 원재료인 데다 주된 영업활동이 외국과 거래에서 벌어지는 만큼 실적이 환율의 움직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LG화학은 분기보고서를 통해 자사의 외환위험을 놓고 “국제적으로 영업활동을 영위하고 있어 외환위험, 특히 미국 달러화와 관련된 환율변동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외환위험은 미래예상거래, 인식된 자산과 부채와 관련해 발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LG화학의 자체 분석을 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외화로 표시된 화폐성 자산 및 부채에 미치는 영향만을 따져봐도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법인세비용 차감전 순손익이 9374억7900만 원 줄어드는 효과를 보게 된다.
LG화학, 롯데케미칼을 비롯해 국내 주요 대기업 그룹에서는 금융권과 통화스왑계약 등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달러 가치의 움직임에 따른 경기 흐름과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 변화, 국제유가 흐름까지 고려한 석유화학 제품의 스프레드 변화 등에 따른 불확실성을 모두 대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롯데케미칼은 대산산업단지에서 HD현대케미칼과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놓고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했다.
특히 LG화학, 롯데케미칼이 나프타분해설비(NCC) 감축 등 포트폴리오 조정을 진행 중이라는 시점에 고환율이 이어지고 있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 이후 체질 개선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나 고환율에 따른 부담은 지원책 마련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화 관련 부담을 살펴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으로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5대 주요 은행의 평균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148.6%로 2024년 말과 비교해 20.2%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파악된다.
외화 유동성커버리지 비율의 하락은 외화 유출에 은행의 단기적 대응 능력이 약화됐다는 의미다. 5대 주요 은행의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은 아직 규제 수준인 80%를 크게 웃돌고 있으나 지속적 하락은 외화 조달 비용의 상승과 이에 다른 외화 공급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NCC 감축 뒤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확대를 위한 투자 확대 과정에서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고환율은 석유화학업체에 이중 부담을 주는 셈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산업 특성상 환율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 두면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관리해 오고 있다”며 “다만 현재와 같이 ‘뉴노멀’로 여겨질 정도의 환율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데 따른 영향은 완전히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