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재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삼성전자의 재도약을 위한 체질개선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16년 사법농단 사태 이후 9년 만에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 삼성전자 위기를 극복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준법 경영에 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진 상황에서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삼성전자가 대외 신인도를 높이고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란 관측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위기론’을 극복하기 위해 우선 반도체, 스마트폰 등 주력 사업에서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고, 컨트롤타워 재건 등을 통해 조직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7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경영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 측은 판결 직후 “대법원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재용 회장은 그동안 ‘기술, 속도, 인재’라는 3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뉴삼성’으로 도약하자는 비전을 제시해왔다. 기존 단순 하드웨어 제조 중심의 삼성을 넘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혁신 생태계에서 글로벌 초격차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회장이 2020년부터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재판에 대응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뉴삼성’은 그저 공허한 구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오히려 메모리반도체를 비롯해 압도적 1등을 지켜오던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도,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총수 부재’ 장기화에 따른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먼저 고대역폭메모리(HBM)을 비롯한 메모리의 초격차 확보와 파운드리의 경영정상화에 초점을 맞춰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인공지능(AI) 반도체인 HBM에서 SK하이닉스에 완전히 밀리고 있는데, 이는 총수의 ‘결단과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재계에서 나왔다.
올해 하반기에는 HBM4(6세대) 양산을 통해 반전을 노리고 있는 만큼, 이 회장이 직접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경영진들을 만나 글로벌 세일즈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은 최근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한 뒤 취재진을 만나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사업 정상화도 시급하다.
이 회장이 ‘2030년 글로벌 1위’를 외쳤던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최근 매분기 수조 원대 적자자를 내며 회사에 큰 재무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적자 폭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파운드리 분사 가능성에 관련한 질의에 “분사에 관심이 없다”며 파운드리 사업 확대 의지를 드러냈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운신이 자유로워진 만큼 반도체, 로봇, 바이오 분야 등에서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
신사업 강화를 위한 인수합병도 더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로봇, 메디테크(의료+기술), 공조, 전장 분야에서 새 먹거리를 찾고 있는데, 올해 들어 공조(독일 플랙트그룹), 메디테크(젤스), 전장(마시모 오디오) 기업을 연달아 인수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회장이 2017년 인수를 주도했던 하만은 삼성전자의 알짜 자회사로 자리 잡으며 성공적인 인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다시 직접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게 된 만큼 반도체, 로봇, 바이오 등에서 대형 인수합병이 성사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 회장은 이르면 2026년 3월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복귀하고, 삼성전자 중심의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현재 삼성의 위기 원인을 컨트롤타워의 부재에서 찾기도 한다. 그룹 내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임기가 짧은 각 계열사나 사업부 수장들이 장기적 성과보다는 1~2년 단기 성과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가 각 사업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과거 미래전략실와 비교하면 규모가 작아 컨트롤타워 역할보다는 각 부문의 조율 기능만 담당하고 있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월 “컨트롤타워는 준법감시위원회 내부에서도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할 정도로 여러 관점에서 평가가 되는 부분”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고 이끌어 나갈지는 회사에서 많은 고려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