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소액주주들이 롯데지주를 주목하고 있다. 상법 개정에 따라 비상장 자회사를 기업공개(IPO)하기 위한 허들이 기존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롯데지주는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롯데바이오로직스, 코라이세븐 등의 비상장 자회사의 상장을 예전부터 고려해왔기 때문에 상법 개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 롯데지주가 비상장 자회사의 상장 문제를 놓고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하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오히려 롯데지주의 가치를 높이자는 명분을 앞세워 비상장 자회사의 상장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풀 수 있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성장성이 높은 자회사를 상장하는 것이 롯데지주 주주가치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내밀 수 있다는 것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으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소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던 자회사의 중복상장 문제가 크게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롯데지주의 대응이 주목받고 있다.
자회사 중복상장은 이미 상장이 되어 있는 모회사가 기존 사업부나 신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한 뒤 해당 자회사를 상장하는 행태를 말한다. 흔히 ‘쪼개기 상장’이라고 불린다.
소액주주의 권리가 잘 보장된 선진시장에서는 이런 사례가 드물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글로벌 기업들 대부분은 지주회사가 상장한 경우 핵심 자회사라 할지라도 상장하지 않는다. 모회사가 받아야 할 주목을 자회사가 받으면 모회사의 주가가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된 상법은 이런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액주주 이익 보호’라는 명분에서 추진된 상법 개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는 쪽으로 만들어졌다. 기존에는 이사가 회사의 이익에만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소액주주의 이익까지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집중된 중복상장 문제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롯데지주가 이런 문제에 난처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보고 있다.
롯데지주는 과거 상장을 계획했거나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밝혀놓은 비상장 자회사만 자그마치 3개나 갖고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롯데바이오로직스, 코리아세븐이 그 주인공들이다.
개정 상법이 마련된 상황에서 롯데지주가 이들의 상장을 추진한다면 당장 잡음이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칫하다가는 롯데지주의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다른 얘기도 나온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법개정안 처리가 활발하게 논의되던 6월 초 보고서를 통해 “만일 특정 지주회사가 비상장 자회사에 대해 재무적투자자(FI)와 특정 기한까지 상장을 약속했거나, 과거에 상장을 추진했다가 철회하거나 중단한 이력이 있거나, 실적 부진 장기화 또는 대규모 투자 등으로 자금 조달이 시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 지주회사는 비상장 자회사를 상장하거나 매각할 유인이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이럴 가능성이 있는 지주회사 가운데 하나로 롯데지주를 꼽았다.
롯데지주의 비상장 자회사 현황을 구체적으로 보면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올해 4월부터 상장 준비에 본격 들어갔지만 5월 상장을 철회했다.
기관 수요 예측이 부족했던 탓인데 미래에 적정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시점이 되면 상장을 재추진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롯데지주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상장 실패로 재무적투자자의 보유 지분을 약 3700억 원에 사줬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앞으로 3~4년 안에 상장할 가능성이 있다. 초대 수장이었던 이원직 전 대표이사가 2023년 10월에 “2027년이나 2028년에 상장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국내외 공장 투자 때문에 자금 조달이 시급한 상황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현재까지 롯데지주에서 지원받은 금액은 6369억 원인데 이 가운데 인천 송도공장 건립에만 약 3천억 원이 투입됐다.
▲ 롯데지주의 비상장 자회사 상장이 큰 문제될 리 없다는 시각도 주주들 사이에서 나온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경. <롯데그룹>
공장 건설을 위해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 조달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점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세븐 역시 과거에 기업공개 가능성이 거론됐던 기업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롯데지주는 현재 코리아세븐 지분 약 80%를 들고 있다. 차입 부담 확대와 실적 부진 등으로 상장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지만 ‘편의점업계 만년 3위’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라도 시장에서 돈을 끌어와야 하는 상태다.
문제는 롯데지주가 개정 상법 아래에서 비상장 자회사 3곳의 상장을 추진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미 과거부터 상장 가능성이 거론된 기업이라는 점에서 무리가 없다는 시각도 나온다.
롯데지주 주주들 얘기를 살펴보면 “느닷없이 물적분할로 회사를 쪼개 자회사를 상장하는 경우도 아닌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상장 가능성이 전혀 거론되지 않다가 괜찮을 것 같으니 돌연 쪼개기 상장하는 경우와 롯데지주는 다르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비상장 자회사의 상장을 통해 롯데지주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 등 주력 계열사의 실적 회복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그나마 성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롯데바이오로직스와 같은 회사를 상장하면 모회사의 주주가치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소액주주들은 롯데지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롯데지주 주가의 올해 상승폭만 46.65%나 된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