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김홍국은 1957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판돈으로 양계사업을 시작했다.

닭값 파동으로 사업을 접고 식품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양계장을 인수해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식품회사 하림을 설립한 뒤 하림그룹으로 키워 회장에 올랐으며 적극적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늘리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맨손으로 국내 축산업계 1위 업체를 일군 자수성가 CEO로 유명하다.

열 한 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판 돈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다시 구입해 이를 되파는 식으로 양계사업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때 닭 5000마리, 돼지 700마리를 길러 이미 축산업자 대열에 올랐다.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을 품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긍정론자다. 직원들에게 “지금도 세상에는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한다.

인생의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살아왔기에 위기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인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평생 큰 위기를 세 번 겪었으며 이를 다 극복했다고 자평한다.

첫번째 위기는 1982년 닭값 폭락파동이 일어나자 찾아왔다. 양계사업을 접고 식품회사에 취직해 재기를 꾀하다 사육가공유통을 수직계열화하는 ‘삼장통합’을 발상해내고 다시 사업에 뛰어들어 재기했다.

두번째 위기는 IMF때로 초현대식 공장을 짓자마자 외환위기가 오는 바람에 경영위기를 겪었다. 해외로 눈을 돌렸고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산하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2천만 달러를 투자받아 위기를 극복했다.

세번째 위기는 2003년으로 당시 공장이 화재로 전소됐다. 설상가상으로 조류독감도 유행했다. 사업포기 대신 남의 공장을 빌려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최대한 대출을 끌어와 신 공장을 건설했다. 하림은 신공장 건설로 생산성이 향상되자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입지가 더 튼튼해졌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 “위기를 견디면 기회가 된다”며 “위기를 온전히 극복해 내는 것은 ‘40년짜리 인생 대학’을 나와 성숙함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축산업으로 시작해 3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9조원 규모의 그룹사로 성장하고 중국, 필리핀, 베트남, 미국 등 해외 10개 사업장에 진출했다.

‘삼장 통합경영’으로 수직계열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장 통합경영은 농장-공장-시장을 연결해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영시스템을 말한다.

하림에서 시작해 닭고기 가공업체인 올품, 가축사료 전문기업인 천하제일사료, 가축약품 전문 회사인 한국썸벧, 농수산식품 전문 홈쇼핑업체인 NS홈쇼핑, 양돈과 사료부문 전문 기업인 선진, 팜스코, 오리 계열화 업체인 주원산오리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인수합병을 선호한다. 인수합병을 통해 하림을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송아지를 사서 키우려면 3년 걸리지만 마른 소를 치유해서 3~4개월 키우면 좋은 소가 된다’는 지론을 강조한다.

하림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닭고기 부위별 판매업체 '올품'은 김홍국의 아들 김준영씨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홀딩스'로 연결되는 지배구조의 중심고리가 되고 있어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 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6년 식품회사 하림을 창업했다.

2001년 천하제일사료와 올품, 한국썸벧, 농수산홈쇼핑을 계열사로 편입시키며 하림그룹을 만들고 회장에 올랐다.

이후 선진, 팜스코, 주원산오리, 디디치킨, 멕시칸치킨, 선진, 그린바이텍, 팬오션 등을 인수합병하며 하림그룹을 계열사 58개, 자산규모 9조 원대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 학력

이리농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회사를 경영하다 1994년 호원대에 진학해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원광대학교에서 경제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네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1993년 신한국인, 1999년 신지식인에 선정됐다.

2006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 상훈

1993년 신한국인, 1999년 신지식인에 선정됐다.

2006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어록


“파괴된 한국의 기업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 같은 차별규제부터 철폐돼야 한다. 차별규제를 전향적으로 풀어야 청년실업 문제 해소,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경제력 집중 해소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규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수준.” (2016/04/25,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특별좌담회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를 비판하며)

“기업가들은 늘 위기와 마주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난관들을 헤쳐나가는 건 기업인들의 숙명이죠.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첫 번째 요소가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모든 상황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합니다.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기회는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기회를 움켜쥐고 도전하려면 먼저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상황이 펼쳐져도 안주하지 않아야 합니다. ‘안전지대를 떠나라’는 명제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임직원들에게도 이 같은 정신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도전의 노정이니까요.” (2015/1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어느 날 슈퍼마켓에 갔다가 진열된 소시지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돼지 가격은 폭락했는데 소시지 가격은 변동이 없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죠. 그 때의 깨달음을 발전시켜 농장-공장-시장을 통합하는 삼장 통합경영을 구상했고, 닭고기 사업에 접목시켰습니다.” (2015/1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단백질 식품의 세계적인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그 기반이 되는 축산업은 미래의 유망산업이다. 특히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는 중국과 돈육 생산원가가 높아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 시장이 우리의 지척에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 (2015/08/24,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대한한돈협회가 주관한 ‘젊은이가 찾아오는 희망, 한돈산업 2세 한돈인 세미나’에서)

“우리는 식량자급률 54%, 곡물자급률 26% 정도다. 수입이 안되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다. 수입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시장은 세계화돼 있는데 국내 자원은 없으니 우리는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 네덜란드처럼 밖에서 자원을 가져와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 다시 세계로 수출하는 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농업계는 이런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만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식량자급은 농업무역에서 흑자를 내야 가능하다. 식량개념도 쌀 중심에서 단백질까지 포함해야 한다.”( 2012/06/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부모님 말씀대로 공부만 했다면 지금의 하림은 없었을 것이다. 형제들 모두 공무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상상도 못했던 기회가 여기저기 쏟아진다.” (2011/08/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 평가

맨손으로 국내 축산업계 1위 업체를 일군 자수성가 CEO로 유명하다.

열 한 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판 돈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다시 구입해 이를 되파는 식으로 양계사업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때 닭 5000마리, 돼지 700마리를 길러 이미 축산업자 대열에 올랐다.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을 품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긍정론자다. 직원들에게 “지금도 세상에는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한다.

인생의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살아왔기에 위기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인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평생 큰 위기를 세 번 겪었으며 이를 다 극복했다고 자평한다.

첫번째 위기는 1982년 닭값 폭락파동이 일어나자 찾아왔다. 양계사업을 접고 식품회사에 취직해 재기를 꾀하다 사육가공유통을 수직계열화하는 ‘삼장통합’을 발상해내고 다시 사업에 뛰어들어 재기했다.

두번째 위기는 IMF때로 초현대식 공장을 짓자마자 외환위기가 오는 바람에 경영위기를 겪었다. 해외로 눈을 돌렸고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산하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2천만 달러를 투자받아 위기를 극복했다.

세번째 위기는 2003년으로 당시 공장이 화재로 전소됐다. 설상가상으로 조류독감도 유행했다. 사업포기 대신 남의 공장을 빌려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최대한 대출을 끌어와 신 공장을 건설했다. 하림은 신공장 건설로 생산성이 향상되자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입지가 더 튼튼해졌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 “위기를 견디면 기회가 된다”며 “위기를 온전히 극복해 내는 것은 ‘40년짜리 인생 대학’을 나와 성숙함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축산업으로 시작해 3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9조원 규모의 그룹사로 성장하고 중국, 필리핀, 베트남, 미국 등 해외 10개 사업장에 진출했다.

‘삼장 통합경영’으로 수직계열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장 통합경영은 농장-공장-시장을 연결해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영시스템을 말한다.

하림에서 시작해 닭고기 가공업체인 올품, 가축사료 전문기업인 천하제일사료, 가축약품 전문 회사인 한국썸벧, 농수산식품 전문 홈쇼핑업체인 NS홈쇼핑, 양돈과 사료부문 전문 기업인 선진, 팜스코, 오리 계열화 업체인 주원산오리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인수합병을 선호한다. 인수합병을 통해 하림을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송아지를 사서 키우려면 3년 걸리지만 마른 소를 치유해서 3~4개월 키우면 좋은 소가 된다’는 지론을 강조한다.

하림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닭고기 부위별 판매업체 '올품'은 김홍국의 아들 김준영씨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홀딩스'로 연결되는 지배구조의 중심고리가 되고 있어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 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 기타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가장 즐겨있는 책으로 주저없이 성경을 꼽는다.

집무실에 초등학교 학년별 도덕 교과서들을 비치해두고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본다고 한다. 성공이유를 초등학교 도덕책에서 배운 기본과 상식에서 찾는다.

하림(夏林)은 '여름숲'이라는 뜻이다. 진정한 땀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 땀을 식혀줄 시원하고 풍요로운 그늘을 자처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을 쌓으며 2007년 대선에서 지지를 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맡기려고 했으나 고사했다.

2014년 11월16일 프랑스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에서 열린 나폴레옹 모자 경매에 참여해 나폴레옹이 직접 썼던 모자를 188만4천유로(25억8천만 원)에 낙찰받았다.

김홍국은 “나폴레옹은 끝없는 도전과 개선을 상징하는 인물이어서 평소 존경했다”며 “(낙찰받은 모자를 어떻게 활용할지)아직 구체적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모자를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