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트럼프 관세 위협'은 성장 기회, 삼성전자 반도체 초격차 전략 따른다

▲ TSMC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관세 압박과 투자 요구에 적극 대응하며 이를 경쟁사와 격차를 벌리는 기회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웨이저자 TSMC 회장이 현지시각으로 3월3일 백악관에서 미국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부과 위협에 대응해 시설 투자를 확대하며 이를 위기가 아닌 성장 기회로 삼겠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인텔 등 파운드리 경쟁사가 고전하는 사이 기술력과 생산 능력 격차를 크게 벌려 앞서나가며 선두 지위를 강화하는 ‘초격차 전략’을 쓰는 셈이다.

20일 대만 디지타임스를 비롯한 외신을 종합하면 반도체 관세를 둘러싼 트럼프 정부의 목적과 TSMC의 중장기 사업 전략이 점차 비슷한 선상에 놓이고 있다.

디지타임스는 “TSMC가 미국 정부의 관세 압박과 투자 요구로 어려운 시험대에 놓였다”며 “하지만 투자 확대에는 오히려 속도가 붙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는 대만에서 제조되는 TSMC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에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를 협상카드로 삼아 TSMC가 미국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요구하는 전략이다.

TSMC는 최근 미국에 1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를 발표한 데 이어 콘퍼런스콜을 통해 2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 물량의 약 30%를 미국에서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최첨단 기술은 모두 대만 내 연구센터 및 공장에서만 활용하고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는 도입을 늦추겠다는 기존의 전략 방향에서 노선을 갈아타고 있는 셈이다.

디지타임스는 TSMC가 다른 반도체 기업과 같이 트럼프 정부의 결정에 맞서는 대신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며 발을 맞춰가고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만약 미국 정부가 실제로 고율 반도체 관세를 부과한다면 TSMC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고 대만을 향한 군사지원 축소 등 외교적 타격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TSMC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 투자 확대를 오히려 성장 기회로 삼겠다는 방침도 앞세우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투자 요구가 엔비디아와 애플, AMD 등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을 향한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압박으로도 이어지고 있는 만큼 기회가 커졌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와 AMD, 애플은 최근 TSMC가 본격 가동을 앞둔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 공장에 주요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기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디지타임스는 TSMC가 이러한 대형 고객사들의 수주 물량 급증에 힘입어 미국 공장의 반도체 생산 단가를 대만보다 약 30%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과 운영에는 대만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파악된다.

디지타임스는 “TSMC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강력한 가격 협상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미국 투자에 따른 금전적 부담을 덜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TSMC '트럼프 관세 위협'은 성장 기회, 삼성전자 반도체 초격차 전략 따른다

▲ TSMC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파운드리 1공장.

파운드리 경쟁사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인텔도 미국에 미세공정 반도체 제조공장을 건설해 대형 고객사들의 수주 확보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미국 공장의 가동 예정 시점을 잇따라 늦추고 있으며 인텔도 올해 양산을 앞둔 18A 공정의 위탁생산 물량을 수주하는 데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TSMC가 초반부터 다수의 고객사 주문을 확보하고 투자도 확대해 미국 내 생산 능력을 키우는 일은 자연히 중장기 관점에서 경쟁사와 더 큰 격차를 벌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디지타임스는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이 TSMC의 미국 공장을 채우고 있다”며 “고객사들이 TSMC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지배력 강화는 과거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 자리잡은 ‘초격차’ 전략과 유사한 양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업계 1위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경쟁사가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확보해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는 초격차 전략을 장기간 앞세워 왔다.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TSMC가 현재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형 고객사 수주를 사실상 독점하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와 점유율 격차를 더욱 벌리는 상황은 이러한 경영 방침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관세 압박마저 미국 투자 확대를 통한 기회로 바꿔내는 능력 역시 TSMC의 압도적 기술 경쟁력이 불러온 성과로 볼 수 있다.

디지타임스는 “TSMC는 반도체와 전자업계 전반의 혼란 속에서도 홀로 ‘평행우주’에 있는 기업처럼 보인다”며 안정적 실적 기반을 유지하는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렵고 반도체 파운드리 수요도 소수의 대형 고객사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은 TSMC에 큰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당장 트럼프 정부가 엔비디아와 AMD의 인공지능 반도체 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TSMC가 실적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디지타임스는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수요 지연이나 축소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며 “TSMC는 여전히 낙관적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 시장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