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후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 노조원들이 경기도 판교 유스페이스 광장에 모여 파업 결의를 위한 본 집회를 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우려했던 '카카오톡 먹통' 등 플랫폼 서비스 장애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성과 보상 체계와 고용 안정을 둘러싼 노사 간 입장 차가 극명해 갈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조 측은 이달 29일 2차 연차 투쟁을 예고하며 장기전을 예고했다.
10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크루유니온)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본사 부분 파업을 단행했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근무를 멈춘 시간은 총 4시간이다.
노조 주최 측에 따르면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 주최로 진행된 이날 집회에는 카카오 본사를 비롯해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디케이테크인, 엑스엘게임즈 등 5개 법인의 노조원 약 800명이 판교역 광장에 집결했다.
현장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으나 휴업 형태로 파업에 동참한 인원까지 합산하면 전체 참여 인원은 약 15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오후 12시부터 노조원들은 "무책임한 경영진은 퇴진하라", "공동 교섭을 쟁취하자"는 피켓을 들고 판교역 일대에서 가두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엔씨소프트, 엑스엘게임즈, 웹젠 등 국내 대표 IT·게임 기업들이 밀집한 판교 테크노밸리 중심가를 행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원들은 "우리가 도로 위에 나선 것은 카카오 노동 환경의 실태를 알리기 위함"이라며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관심과 응원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점심 시간을 맞아 거리로 나온 판교 일대의 직장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행진을 지켜보기도 했다.
약 1시간 도보 행진을 마친 노조원들은 판교 유스페이스 광장에 모여 파업 결의를 위한 본 집회를 열었다.
서동렬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이번 공동 파업을 통해 카카오 지회원들의 단단한 조직력과 단결력을 사측에 확실히 보여주자"며 "사측이 노동자들의 편을 가르거나 무시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이번 파업이 단순히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그룹 전반의 고용 불안에서 비롯된 것임을 주장했다.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은 "현재 공동 파업에 참여 중인 카카오그룹 5개 법인 가운데 3곳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 노동자들의 밥줄이 걸린 문제"라며 "나머지 2곳 법인 역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인 만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아 파업하고 있다는 일각의 프레임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10일 오후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 노조원들이 "무책임한 경영진은 퇴진하라", "공동 교섭을 쟁취하자"는 피켓을 들고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일대에서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날 4시간 동안 이어진 부분 파업 기간 동안, 카카오톡 등 주요 플랫폼 서비스의 마비나 기술적 차질은 빚어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카카오 본사 차원의 파업이 처음이었던 만큼 카카오톡, 카카오T, 카카오페이 등 국민 일상과 밀접하게 맞물린 주요 서비스가 먹통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도 지난 8일 세종청사에서 카카오 경영진과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주요 서비스의 비상대응체계를 사전에 심층 점검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했다.
다만 노사의 근본적 입장 차이가 극명해 갈등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사 간 간극을 좁히지 못한 가장 큰 쟁점은 성과급 보상 구조다. 카카오 노사는 지난해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한 전체 성과급 재원 규모 산정안과, 500만 원 상당의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일반 직원 성과급 체계에 포함할지를 두고 수개월째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날 노조 관계자는 "2025년 카카오톡 대대적 개편인 '빅뱅 프로젝트' 추진 당시, 프로젝트만 성공시키면 사측에서 인당 1500만 원에서 최대 3천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언급하며 보상을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지만 회사는 올해 어떠한 설명도 없이 약속에 한참 못 미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며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이 약속을 지키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배분 기준을 함께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RSU 지급 방식을 둘러싼 의견 차도 여전하다. 사측은 이를 성과급 항목으로 봤으나 노조 측은 RSU를 성과급에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승욱 카카오 노조 지회장은 집회 이후 취재진과 만나 "RSU가 사측 주장대로 주주 가치를 제고하고 책임 경영에 도움이 되는 수단이라면 직원들도 공감할 수 있다"며 "그러나 경영진에게는 성과급을 현금성 자산으로 지급하면서, 노동자들에게는 당장 현금화 가치가 떨어지고 묶여 있는 RSU로 지급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지난달 29일 교섭 결렬 직후 "현재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 보상안의 총 규모는 영업이익 기준으로 볼 때 회사 경영에 큰 부담이 되는 수준"이라며 "현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감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날 박성의 카카오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명확한 시각 차가 있다"며 "그렇다면 임원들의 급여는 왜 그렇게 인상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 카카오 노동조합원들이 10일 오전 경기 성남시 판교역 인근에서 파업 사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IT업계에서는 카카오의 내부 균열이 미래를 향한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불거졌다고 분석한다.
국내 경쟁사인 네이버가 엔비디아와 동맹을 맺고 '글로벌 AI 팩토리'라는 신사업 청사진을 발표하며, AI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선임 직후부터 비대해진 조직을 효율화하고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해 경영 쇄신 노선을 걸어왔다. 지난해부터는 AI 중심의 전사적 사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쇄신을 위해 연쇄 계열사 구조조정이 이어지자 구성원들이 고용 불안을 호소하며 반발했고, 성과 보상에 반발한 본사 조직과 결합하며 연대 파업 사태를 맞게 됐다. 내부 결속이 무너진 상태에서 정 대표가 목표로 하는 AI 중심 전환 전략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조는 이달 29일 강도를 높여 2차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승욱 지회장은 "오늘의 파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6월 29일 ‘로그오프 데이(Log-off Day)’를 준비해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그오프 데이는 유연근무제 시스템을 활용해 전 조합원이 시스템 로그아웃 상태를 유지하고, 개인 연차를 통해 근무를 거부하는 형태의 파업 방식이다. 박 부지회장은 "실질적으로는 하루짜리 연차 투쟁"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카카오 지회 전체 조합원 수가 5천 명을 웃도는 만큼, 실제 29일 로그오프 데이가 강행될 경우 이번 4시간 부분 파업보다 여파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서 지회장은 "노동위원회 조정이 결렬된 뒤 사측과 단 한 차례 교섭 자리를 가졌으나, 상황을 진전시킬 만한 논의는 없었다"며 "가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부분은 현재의 보상안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과 관련해 사측 관계자는 "회사는 안정적 서비스 운영과 고객 영향 최소화를 위해 실시간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며 "조속한 합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조와 대화하며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