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랄해의 비극은 인간 손에서 시작했다. 실마리 또한 인간이 찾고 있다. 에코백 팀이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생생한 아랄해 인근 현지 주민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 KIDC >
한때 ‘황금어장’으로 불리던 아랄해는 이제 내리쬐는 햇빛을 되돌리는 모래만 자욱한 곳으로 변했다. 배는 갈라진 대지에서 항로를 잃었고 우즈베키스탄 현지 봉사단 ‘에코백’ 팀의 시선도 사막 외엔 둘 곳이 없었다.
비정부기구(NGO) 봉사단 에코백 팀이 9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 프로그램을 통해 사막화에 90% 이상 면적이 줄어든 아랄해를 찾았다. 에코백 팀은 현장의 생생한 황량함과 함께 이에 맞서는 희망도 동시에 전해 왔다.
▲ 아랄해는 이제 바다도 호수도 아니다. 우즈베키스탄 유일 항구도시 무이낙은 이제 '배들의 무덤'을 찾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 KIDC >
20대인 송주희 단원과 엄수진 단원 두 명으로 이뤄진 에코백 팀은 지난 9월18일부터 19일까지 우즈베키스탄 누쿠스(Nukus)를 거쳐 아랄해를 방문했다.
에코백 팀은 KOICA-NGO 봉사단으로 우즈베키스탄 환경 NGO 에코로그(Ekolog)에 파견돼 지난 11달 동안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봉사활동을 펼쳐 왔다.
KOICA의 NGO봉사단(기후환경)은 기관위탁을 통해 개발도상국과 협력 증진 등을 위해 단원을 파견하는 사업으로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진행된다. 단원들의 실제 활동 기간은 1개월 국내활동과 11개월 동안의 현지 활동으로 이뤄진다.
(사)한국국제개발협력센터(KIDC)는 단원 모집선발과 파견, 관리 등의 사업 운영 전반을 맡고 있다. 환경교육 등과 관련해서는 (사)환경교육센터(KEEC)와 협력하고 있으며 이번 사업도 두 기관의 주관 아래 진행되고 있다.
▲ 아랄해의 비극은 목화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과거 소련 시절 목화 사업을 위해 대규모의 무리한 관개사업이 펼쳐졌고 이에 따라 수량이 줄어드는 재앙이 시작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진은 아랄해의 목화밭. < KIDC >
송주희 단원과 엄수진 단원이 아랄해를 직접 찾은 것도 현지 봉사활동의 일환이었다. 특히 20세기 최악의 환경 재앙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랄해 사막화와 관련된 컨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아랄해(海)는 방대한 크기와 염수 탓에 '바다'로 여겨졌고 ‘아랄’도 ‘섬바다’를 뜻하는 고대어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사실은 내륙에 갇힌 대형 호수다.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과, 남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에 맞닿아 있다.
한때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로 남한 면적의 3분의 2 크기에 이르렀고 어족이 풍부해 중앙아시아의 ‘황금어장’으로 여겨졌다.
다만 이제는 사막이 됐다. 아랄해 면적은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급격한 사막화로 급감했고 수량도 90% 이상 줄어 과거 아랄해 대부분 지역이 생물도 살지 못하는 곳으로 뒤바뀌었다.
단원들이 현지에서 전해 온 아랄해의 분위기도 상상 이상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유일 항구도시였던 무이낙은 이제 말라비틀어진 땅 위를 지키는 ‘배들의 무덤’을 찾는 관광지로 바뀌었다. 1960년대 소련 전체 어획량의 6분의 1을 차지하던 ‘황금어장’의 생선창고와 통조림 공장은 모두 버려져 있었다.
▲ 아랄해의 버려진 과거 생선공장. 아랄해는 철갑상어와 잉어 등 풍부한 어종을 자랑했던 곳으로 과거 어업이 발달했다. < KIDC >
단원들은 아랄해 사막화가 단순한 중앙아시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랄해 변화를 직접 겪은 노년층부터 변화 속에 성장한 젊은 세대에 이르는 인터뷰를 진행한 뒤 문제의 핵심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송주희 단원은 “이번 답사를 통해 아랄해 사막화가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전체, 나아가 지구 생태계의 순환과도 연결된 문제란 점을 느꼈다”며 “마르지 않고 남아 있는 아랄해와 주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국제적 협력과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에코백 팀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업사클링 키링 제작 등 환경 봉사활동을 펼쳤고 이같은 강점을 아랄해 인근 도시 누쿠스 시에서도 발휘했다. < KIDC >
현재 아랄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국제적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에코백 팀도 지난 9월 아랄해 인근 도시에서 그동안의 이력을 살린 활동을 펼쳤다.
송주희 단원과 엄수진 단원은 그동안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를 중심으로 환경활동을 펼쳤다. 범위는 업사이클링 키링 제작부터 현지 봉사자 대상 환경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에코백 팀은 지난 9월15일부터 17일까지 누쿠스 시에서 플로깅과 업사이클링 키링 제작, 환경 교육 등을 펼쳤다. 누쿠스 시는 우즈베키스탄 내 자치공화국 카라칼팍스탄의 수도로 과거 아랄해로 가는 관문도시로 여겨졌다.
두 단원을 누쿠스 현지 청소년과 함께 이스티클롤(Istiqlol, 독립) 공원 플로깅, 폐기물 및 제로웨이스트 관련 게임, 업사이클링 키링 제작 체험 활동 등을 펼쳤다.
에코백 팀은 현지 학생들이 교육에 진지하게 참여해 이번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송주희 단원은 “학생들이 환경교육에 진지하게 임하고 내용을 꼼꼼히 필기하며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며 “우리가 전달한 메시지가 이 학생들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 에코백 팀이 우즈베키스탄 누쿠스 시 학생을 대상으로 카훗 퀴즈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 KIDC >
체험 참가자 키질바예바 쿠미사이(Kizilbayeva Kumisay)씨는 ‘폐기물로부터 새로운 제품’ 혁신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업사이클링 키링’ 활동 사례를 소개하며 상을 받았다. 해당 소식은 현지 주요 매체에도 보도됐다.
오히려 외지인이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펼친 활동이어서 의미가 깊었다는 목소리도 전해졌다.
페루즈벡(Feruzbek) 에코로그 현지 직원은 “우즈베키스탄에도 환경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많다”며 “다만 외부인이 직접 기획하고 실천하는 활동은 더욱 큰 영향력을 불러일으킨다”고 바라봤다.
단원들은 이번 누쿠스 시에서의 활동이 스스로에게도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엄수진 단원은 “교육 마지막 날 학생에게 전통 모자를 선물로 받은 순간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며 “단순한 감사를 넘어 내가 그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고 진심 어린 교류를 나눴다는 의미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 에코백 팀은 우즈베키스탄 누쿠스 시에서 공원 플로깅 활동도 펼쳤다. 1시간 동안 약 12봉지 분량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플라스틱 병뚜껑도 수집했다. < KIDC >
에코백 팀과 같은 인간의 공조 노력은 아랄해 문제의 실마리를 서서히 찾아가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북아랄해 수량은 2025년 말 234억 m³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댐 건설 등에 힘입어 2021년(189억 m³) 대비 23.8% 늘어나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올해 초 북아랄해 수량이 2008년의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유엔을 필두로 전세계가 머리를 맞댄 가운데 국내에서는 KOICA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KOICA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와 협력해 우즈베키스탄 내 카라칼팍스탄 등 4곳에 560만 달러(약 79억 원)을 투입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아랄해 위기 대응 사업(GRIP)을 추진했다.
아랄해 위기 대응 사업의 핵심 목표는 △기후스마트농업 정책 수립 지원 △소농민들의 기후회복 역량개발 △기후적응 농업비즈니스 모델 개발 △지역기업 및 농민들의 기후회복을 위한 금융접근성 개선 등으로 이뤄졌다.
KOICA는 지난해에는 GGGI와 우즈베키스탄 기후 대응을 위한 원화 기준 1조4천억 원 규모의 국제 채권 발행 전 과정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 결과 우즈베키스탄 상업은행 SQB와 아그로뱅크(Agrobank) 발행 채권은 모두 런던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됐다.
▲ 에코백팀이 우즈베키스탄 누쿠스시에서 교육대상자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KIDC >
다큐멘멘터리는 모두 4부작으로 이뤄지며 생생한 아랄해 모습과 다양한 연령대 현지인의 인터뷰도 담긴다. 지난 12일부터 2주에 한 편씩 ‘KIDC 키득키득 해외봉사단’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있다.
에코백 팀은 영상들을 하나로 엮어 내년 1월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다큐 상영회도 연다. 이를 통해 문제의식을 나누고 대중의 인식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OICA와 KIDC, KEEC의 이번 봉사단 사업도 2026년 3월까지 진행되며 우즈베키스탄과 몽골, 탄자니아 등 3개국 각 나라 단원들도 각자 맡은 활동을 열심히 이어간다. 에코백 팀은 2026년 3월까지 우즈베키스탄에서 쭈욱 활동을 지속한다.
엄수진 단원은 “아랄해 답사는 환경 보호는 선택이 아닌 지속적 실천이 필요한 과제란 점을 되새겼다”며 “답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환경 다큐멘터리가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작은 실천들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환 기자